리들리 한인장로교회 감리교서 장로교회로 교단변경 이유 ‘상이’
재미한인 50년사 ‘신사참배 반대.’ 신한민보 ‘재정부족’
‘복합적 요인’ 견해도.
중가주 리들리에 1919년 선조들이 설립한 리들리 한인장로교회당. 감리교회에서 장로교회로 교단 변경이유가 문헌과 신문보도가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초기 한인이민교회로 1919년 첫 예배를 시작한 리들리 한인장로교회의 감리교에서 장로교단으로 교단 변경이유에 대해 서로 다른 기록이 발견됐다.
중가주에 위치한 리들리 한인교회는 1919년 2월 전성용 주택을 예배 처소로 정하고 남감리교회 임정구 순행 전도사를 초청하여 예배로 시작됐다. 이후 김형제 상회의 가옥을 얻어 예배당을 마련 후 남감리교회 선교부에 연락하여 1922년 3월 26일에 한인감리교회로 정식 설립 되었다.
재미한인50년사 책자 표지 (1959년 발행)
재미 한인50년사에 의하면 감리교회로 출범한 리들리교회는 1936년 6월 장로교단으로 변경하게 된다. 이 당시 교단 변경 이유에 대해 김원용 선생이 저술, 1959년 출판된 ‘재미한인50년사’ 는 “한국내의 신사참배 문제로 인하여 감리교회와 의사가 충돌되어 연락을 끊은 후 장로교파를 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신한민보 (1931년 7월 2일자)는 당초 감리교회로 출발한 리들리 한인교회가 “1931년 5월 미국 남감리교회 선교부가 재정곤란을 이유로 미국 장로교회로 이전 시키기로 결정, 5월 마지막 주일에 이살음 목사의 주례 하에 전환되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샌프란시스코 한인박물관(관장 정은경)이 지난 9월 샌프란시스코 사적지 지도 책자 발간을 위해 독립기념관의 홍선표 박사에게 문안 감수를 의뢰함으로 밝혀졌다. 이와 같이 문헌과 신문 보도가 상이한 것에 대해 홍선표 박사(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소 책임 연구원)는 재미한인50년사가 오류임을 지적했다.
그러나 중가주 한인 이민 역사 연구가인 이자경 여사는 “당시 일제 강점 하에 있던 시대적 배경과 미국의 경제공황 등 당시 경제적 여건을 고려할 때 단순히 재정 때문만이 아닌 복합적인 요인으로 교단을 옮겼을 것으로 본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리들리장로교회 교단변경에 대한 신한민보 보도 내용(1931.7.2일자)
차만재 교수(프레즈노주립대. 중가주 한인 역사연구회 회장)도 “김호 선생의 감수 하에 집필된 재미한인50년사와 신한민보는 중요한 역사적 자료”라면서 “ 교단 이전은 위의 두 가지 요소가 다 작용한 것으로 본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차만재 교수는 1931년에는 일본에 의해 신사참배가 강요되고 리들리 교회의 후원자 이었던 김호 김형순의 김형제 상회가 아직 부를 쌓기 이전이라 경제적 여유가 여의치 않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리들리 한인장로교회는 김형제 상회가 부지를 제공하고 교인들의 헌금으로 1938년 현 위치(1408 J St.Reedley.CA)에 교회당을 건축, 신앙과 한인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 교회는 교인수가 점차 줄어들자 1972년 멕시코계 교회로 팔려 지금은 ‘멕시코 연합 오순절교회’가 사용하고 있다.
중가주 한인역사연구회(회장 차만재)등 단체와 뜻있는 한인 동포들은 이민선조가 직접 건축하고 선조의 삶과 애환이 담겨있는 중가주 유일의 이 교회당을 되찾아 한인 이민역사박물관으로 만들기 위해 힘쓰고 있다.
<손수락 기자> 2018-11-2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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